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구로사와 아키라 (문단 편집) === 황당한 청혼 === [[1945년]], 제2차 세계 대전에서 패망이 짙어지자 일본인들은 집단 자살을 생각하고 있었다. 그리고 이 시기에 구로사와 아키라는 자신의 2번째 감독작 가장 아름다운 자(一番美しく)의 주연 배우인 여배우 야구치 요코에게 청혼했는데 그 청혼문이 실로 황당하기 그지없어 전설로 회자되고 있다. > "일본이 패전할 것 같다. 만일 일본 국민 전체가 집단 자살해야 한다면, 우리 역시 죽어야 해. 죽기 전에 결혼 생활이 어떤지 경험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?" 그런데 놀랍게도 이 어이없는 편지가 효력을 발휘하여 두 사람은 결혼에 골인했고, 부부는 1985년 야구치 요코가 사망할 때까지 39년을 별 탈 없이 해로했다.--구로사와의 자살 기도는 예외로 치고-- 주변 증언에 따르면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적극적인 대시로 결혼까지 골인했다고 하며, 부부 사이의 금슬은 매우 좋았다 한다. 야구치 요코는 결혼 후 배우로서는 은퇴했지만 대외적으로 구로사와 기요란 본명 대신 야구치 요코란 예명을 계속 사용했었다. 그녀는 남편이 영화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구로사와뿐만 아니라 그 밑의 직원들의 도시락까지 싸는 극진한 내조를 했다고 하며, 그래서 구로사와 아키라 주변인들이 대모라는 별명으로 불렀다 한다. 딸 구로사와 카즈코 증언에 따르면 아버지 구로사와 아키라가 유일하게 꼼짝 못 했던 사람이 어머니였다고. 구로사와가 외국에서 기념품으로 아내를 위해 옷을 사 왔는데 옷이 크다며 "영감은 나랑 같이 산 세월이 얼만데 아직 내 치수도 모르시오."라고 구박당한 적도 있다 한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